암과 동거하다가 길의 끝에 선 적이 있다. 끝에 다다르기 전에는 끝으로 가고 있는 줄을 몰랐다. 설마 하다가 덜컥 끝 날이 오자 참 속절없고 애석했다. 생명은 모든 것임을 그때 알았다. 부재를 느껴 봐야 존재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음식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은 배고픔을 알아야 한다고들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은 이별 끝에 안다고들 하며, 부모님의 소중함은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에야 안다고들 한다.
혹시 필요한 모든 것을 너무 충분하게 받아서일까? 그렇게 우리는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곧잘 잊어버리고 산다. 지은이도 그랬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사는 현대인들처럼 지은이도 사는 데 바빠서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손님, 암! 다른 사람들처럼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가, 현실을 맞닥뜨리고 울부짖었다가, 기나긴 투병 생활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반복했다.
그러나 결국 지은이는 희망을 택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그녀는 생명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녀의 또 다른 삶인 가족이 계속 그녀를 붙들어 주었다. 삶과 죽음을 놓고 고뇌하는 그녀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이 계속 그녀를 붙들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기억을 풀어 놓으며 말한다. “God only knows!” 그렇다. 과연 누가 인생을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인생을 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때문에 그녀의 기억은 또한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엔 같은 ‘무엇’을 희망하는 우리 모두의 기억이다.
1989년 한국 최초 여성수필문학회인 한양수필문우회를 창립, 동인지를 발간하면서 각종 매체에 수필과 칼럼을 기고하는 등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오고 있는 지은이 정연순은,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세밀한 묘사로 독자들과 한층 더 생동감 넘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1부 미친 세포와의 대화 낌새도 모르고 딴전에 기웃대다 북소리 초보환자의 낭만 미친 세포와의 대화 2부 지옥 부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명줄 더하기,빼기 열녀전 죽은 머리카락을 위한 마임 지옥 부근 3부 GOK 고독한 비너스 흔적을 지우며 GOK 생명의 불꽃은 푸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4부 연탄에 관한 개똥철학_다시 일상으로 세 잎 클로버 부끄러움 친절함이 있는 풍경 재미 만들기 연탄에 관한 개똥철학 5부 초코파이에 눈물이 초코파이에 눈물이 축구공 속에 든 탁구공 소소한 "한건"의 즐거움 하늘에 까치밥을 걸어요 죽음을 어루만지며 6부 아담의 경험 바람구멍이 나다 자화상을 보여 드릴까요? 열쇠를 가진 사람 아담의 경험 부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