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십자가를, 다른 손엔 총을 움켜쥐고 긴긴 날을 보낸 노병의 이야기.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그에게 종교는 무거운 굴레였다. 독실한 조부모님의 영향으로 매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묵주기도, 삼종기도를 바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일이면 미사 참례를 해야 했다.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도 그는 교리를 배우러 다니며 문답을 외우고 찰고를 받고 매주 고해성사를 받았다. 이 무슨 생고생인가!
그러나 한국 전쟁의 발발과 함께 군에 입대하게 된 저자를 지탱해 준 것은 신앙이었다. 때론 어머니의 젖줄처럼, 때론 아버지의 음성처럼….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선에서 사람의 목숨은 허망하면서도 질겼다. 매 순간 느끼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조상이 주신 신앙은 저자의 가슴속에서 유일무이한 희망이었다.
휴전 후 그는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부터 50대까지 직업 군인으로서 군복을 입고 전국을 누비며 활동했다. 국방부 차관을 끝으로 군문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에 있어서 신앙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의 위험을 겪으면서 그는 자신에게 무거운 굴레였던 신자로서의 의무들이 오히려 자신을 받쳐 주는 삶의 바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의 기도, 매주의 미사는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 남겨진 날들을 이끌어가는 맑고 시원한 생명수였다. 아무 노력도 없이 조상의 은덕으로 얻은 신앙이 그를 지켜 주는 파수꾼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지혜, 유혹을 이겨 내는 힘, 사람을 얻는 복 등은 모두 신앙에서 흘러나옴을 그는 날이 갈수록 깊이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군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했던 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틀에 박힌 군 생활 안에 보물처럼 묻힌 아름다운 일상을 고백한다. 군인이어서 그는 살맛이 났고 가톨릭 신자여서 행복했다. 아버지로서, 군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는 진정한 리더였다.
“이번 책은 신 장군님이 40여 년간 직업 군인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했는지 그리고 우리 군종 신부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 생생한 경험담을 담은 것이어서 자못 기대가 됩니다. 특히 신 장군님은 현역 시절 군종 사목에 대해 각별한 지원을 해주어 살아 있는 군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지금도 군종 사제들 사이에 군종사의 전설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직업 군인이자 하느님의 종으로 살았던 신 장군님께서 직접 체험하신 군종 사목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이 책이 매우 값진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바쁜 현대 생활에서 나 자신과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 중에서 -
차례
이야기를 시작하며 ........ 14
1부 (1951~1955)
연도로 시작한 군대 생활 ........ 23
소위 임관과 광주의 후덕한 인심 ........ 27
소모품 소위를 잡으러 오는 폭탄 ........ 31
호랑이 신부님의 성탄 카드 ........ 35
야전 천막에서의 미사 ........ 38
백주 대로에서 술 마시는 신부 ........ 42
고난의 예비자 교리 교육 ........ 47
10리 길 미사 참례와 천주교 신자들의 수난 ........ 52
2부 (1957~1961)
타향에서의 결혼 ........ 61
오토바이 타는 군종 신부 ........ 65
삼덕 신학생 ........ 71
부활 대축일에 독방에 갇힌 신부 ........ 77
신학생, 매점 관리인 되다 ........ 80
선생이자 제자 차 신부님 ........ 85
감히 신부님에게 기합이라니! ........ 88
3부 (1961~1968)
신학생이 낳은 아들 ........ 97
막강 군종 14기 ......... 100
연대에 부임한 군종 신부와 성탄 호빵 ........ 103
삼덕 신학생 사제가 되다 ........ 109
미사 시간과 예배 시간 ........ 11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혁명 ........ 116
꾸르실료인가 푸에블로인가 ........ 120
4부 (1968~1974) 연탄가스에 중독된 신부 ........ 127
마리아 세례명을 가진 병사 ........ 130
수사가 지은 군종 사제관 ........ 133
육군 사관학교에서의 사도직 ........ 137
신앙 전력화와 두 번의 세례식 ........ 141
산신제와 성모 마리아 ........ 145
5부 (1975~1978) 민간 본당 생활 ........ 153
군종단의 독립 건물 ........ 157
복무 연장을 내기로 건 군종 신부 ........ 161
별을 달고 다시 찾은 광주 ........164
장엄한 신학교 미사 ........ 167
호랑이 사령관 조문환 장군 ........ 170
나의 위안처 ........173
신부의 눈물 ........ 176
6부 (1979~1982)
수녀들의 야간 해안 초소 위문 ........ 181
백부장과 만부장 ........ 187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과 해성탕 정 신부 ........ 190
수원에서 양구로 ........ 195
12사도회와 성당 신축 ........ 198
부활절에 받은 성탄 카드 ........ 201
수녀 애인 ........ 205
7부 (1983~1987)
처음 맡은 육군 천주교 회장 ........ 211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 ........ 215
평일 새벽 미사 ........ 218
기린 성당 축성 ........ 223
김수환 추기경을 닮은 김수환 추기경 ........ 226
통일 전망대 성모상 축성식 ........ 231
교육 사령부 최초의 군종 신부 ........ 235
대통령과 추기경 ........ 238
예수 성탄 때 먹는 김치죽 ........ 241
이야기를 마치며
나의 아버지 신치구
<2007. 2. 4 가톨릭신문> 육군 중장 출신으로 국방부 차관을 역임하고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장을 지낸 저자는 어리석다는 뜻의 ‘치우’(癡愚)를 자신의 호로 지었을 만큼 스스로를 고지식한 느림보로 자처한다. 저자가 일생의 신앙 체험과 군인으로서의 삶을 수필로 쓴 이 책에는 느린 걸음이지만 하느님의 지혜를 빼곡하게 알아챈 신앙 고백이 담겨 있다. 어려서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의 무게가 굴레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자는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평생을 받쳐준 삶의 바위였음을 깨닫게 된다. 매일 기도와 매주 봉헌하는 미사가 단지 의무가 아니라 남겨진 시간들을 이끌어주는 생명의 물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직업 군인으로서 군생활을 통해 겪은 개인적인 신앙 체험, 군종 신부들을 포함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과의 만남, 옛 군대의 일상들, 그리고 그밖의 군대와 삶, 교회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잔잔한 감흥을 준다.
글쓴이 신치구
1932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저자 신치구 벨라도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1년 뒤인 1951년 입대해 소대장으로 전쟁을 치렀다. 이후 그는 약40년 동안 군에 몸담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은퇴 후에는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를 설립해 교회 사업에 전념하기도 했다. 저서로 <열두 사도의 생애>와 <교회의 정체성>이 있고 <마리아의 생애>와 <요셉의 생애>등을 번역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수환 추기경 전집'(총18권)등을 엮은 바 있다. 군인으로서는 화랑 무공 훈장을, 신앙인으로서는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수장하고 가톨릭 문화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