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육성 기록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현재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가 시복시성 예비 심사 진행 중인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 그의 생애를 담은 책이 새롭게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큰 어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의 삶과 생각은 오늘날 독자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한다.
《추기경 김수환》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일한 회고록으로 그의 삶과 신앙, 한국 현대사를 통과하며 품었던 생각들이 차분히 담겨 있다.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를 보낸 소년 시절, 신학교 생활과 학도병 징집, 추기경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다양한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그가 사제의 길을 결심하기까지의 내적 갈등과 그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으며,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기까지의 과정과 서울대교구장 재임 30년 동안 마주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순간들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번 개정판은 양장본으로 선보인다. 책의 표지에는 추기경이 유년 시절 살던 집을 떠올리며 직접 그린 <옛집>이 실려 있어, 그가 기억하는 따뜻한 정서를 고스란히 전한다. 특히 제목과 소제목에 가톨릭출판사에서 개발한 글꼴 ‘김수환추기경체’를 사용해 책의 상징성을 더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사목 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내어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다. 그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이 책은 시대가 변한 지금에도 여전한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걸어온 길에서 드러나는 용기와 성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시대의 등불’ 김수환 추기경
그 이면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
《추기경 김수환》은 추기경의 내면과 인간적인 면모를 더 자세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11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다각도로 보여 준다.
책 속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깊은 고민과 솔직한 고백도 담겨 있다. 신학교에서 도망칠 궁리를 하던 어린 소년 시절부터, 사제가 된 후에도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고민했던 순간을 진솔한 어조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의지하던 큰형의 부음을 들은 후 형의 방에 누워 잠을 청하던 장면은 우리가 기억하는 추기경의 강인한 모습 이면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도 드러난다.
특히 그의 ‘양심’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다. 일제 강점기 때 한 시험에서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문제 앞에서 소년 김수환은 답안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 그 용기는 훗날 6·10 항쟁 당시 경찰 고위 관계자 앞에서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라고 말하는 신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피정 중에 쓴 일기에서는 “나는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자 되고 싶다. 가난한 자 중에서 가난한 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자.”라고 고백했다. 또한 베드로 사도처럼 깊은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세미나에서 은사를 얻지 못해 낙담한 신부들이 있을까 봐 “추기경도 눈물의 은사를 못 받고 돌아갔다.” 하며 유머 섞인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이렇듯 그가 남긴 말에서 신앙인으로서의 겸손과 따뜻함을 엿볼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9년, 당시 최연소 추기경이자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며 한국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얻고 가톨릭 시복시성의 첫 단계에 있다. ‘시대의 예언자로서 인권과 정의의 보루가 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서 모든 약한 사람들의 지킴이가 되었고, 사회 통합의 선구자로서 화합의 다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등불’, ‘혜화동 할아버지’,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부르던 ‘바보 김수환’ 등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다. 이 책에서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이 그동안 불리던 수식어가 아닌,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이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묻게 된다. 이번 개정판을 통해 그의 삶과 신앙,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를 다시 만나 보길 권한다.
[책속에서]
나는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무척 좋아한다. 산등성이로 석양이 기우는 풍경은 내 고향이고 내 어머니이다. 유년 시절 첫 기억은 서너 살 무렵, 경북 선산에 살 때이다. 어머니는 곡마단이 들어온 읍내 공터 구석에서 국화빵을 구워 파셨다.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가 장사하는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옹기를 팔러 장에 나간 어머니가 해 질 녘이 되어도 안 돌아오시면 큰길로 나가서 어머니가 나타날 고갯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늘 그 시간이면 서쪽 고갯마루에 석양이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 10p.
수많은 종교와 종파가 있지만 가톨릭은 하나다. 세상 어디를 가도 전례와 교리, 교회 구조가 똑같다. 미국 뉴욕 번화가에 있든 아프리카 밀림에 있든 지구상의 모든 가톨릭 교회는 하나의 믿음으로 베드로 사도 후계자인 교황과 연결돼 있다. 즉, 모든 신자가 한 가족 한 형제다. 그러니 패전국의 학도병, 그것도 일본군 군복을 입고 있는 한국 신학생이 그 섬에서 미국 형제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가톨릭 신학생이란 신분이 알려진 덕에 그해 성탄대축일 미사에 참례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성탄절 직전, 군종목사는 수천 명 되는 일본군 중에 유일한 가톨릭 신자인 나를 불러 “유황도에 있는 군종신부가 여기 와서 성탄전야 미사를 할 예정인데 원하면 참례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부도에 군종목사는 있었지만 군종신부는 없었다. 미사 참례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 82-83p.
“제가 하는 말을 정부 당국에 전해 주십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내 입장은 확고했다.
― 328p.
신부 되는 것,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고 주교와 추기경의 삶은 명령으로 떨어졌고, 여기에 따르는 긴 세월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당신 뜻대로 하소서.’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 바오로 사도가 죄 많은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참조)고 하신대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 4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