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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레오 14세 교황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세계는 복잡한 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국제 갈등과 전쟁, 혼란스러운 디지털 환경, 심화되는 정치적 양극화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연대를 위협한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우리에게 점점 더 절실히 다가온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교황의 메시지이다. 

교황의 발언은 종교적 지위를 넘어 국가·정치·경제를 초월하는 ‘윤리적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는 우리 시대의 드문 공적 목소리이기에, 교황의 메시지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와 시대적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직후부터 평화, 일치, 사랑, 경청 등의 단어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나 신앙적 권고가 아니라, 오늘의 인류가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가치들을 정확히 짚어 낸 언어이다. 특히 즉위 직후에 발표한 메시지들은 교황이 어떠한 세계관에서 출발해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첫 신호이자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

레오 14세 교황의 첫 번째 가르침

가톨릭 교회의 문헌과 교황의 발언은 오랜 세월 전 세계적 의제와 국가적 정책, 국제기구의 결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쳐 왔다. 그리고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초부터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시대 속에서 어떤 가치를 최선에 둘 것인지, 교회가 어떤 태도로 시대와 호흡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가 모두와 함께》는 이러한 교황의 초기 메시지를 한 권으로 묶어 새 시대의 출발점을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전 세계를 향한 당부는 물론 각국 지도자에게 보내는 호소, 주교단과 추기경단을 향한 촉구, 새 사제들을 향한 권고,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격려 등 폭넓은 대상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청중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핵심 가치는 일관적이다. 바로 인간 존엄의 회복, 평화를 위한 실질적 행동,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경청, 가장 약한 이들과의 연대이다.

교황의 메시지는 신앙의 테두리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도록 요청한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전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첫 가르침은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새로운 지혜를 마련하고 연대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가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책속에서]

평화는 우리 각자에게서 시작됩니다.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 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의 전쟁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고, 전쟁의 패러다임을 거부해야 합니다.
― ‘말을 순화하는 것’ 중에서, 47p.

티베리아스 호숫가로 우리를 인도하는 복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를 말해 줍니다. 바로 그 호숫가에서 예수님 자신은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악과 죽음의 물속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 공동체를 낚는 사명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호숫가를 지나가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자신처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베드로와 다른 첫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활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들이 이 사명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가며 복음의 희망이 세상의 물속에 잠기도록, 항상 새롭게 그물을 던지면서 모두 다시 하느님의 품속에 안길 수 있도록 생명의 바다를 항해하라고 그들에게 당부하십니다.
― ‘사랑과 일치’, 63p.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께 가까이 가십시오! 밝게 비추고 위로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의 유일한 가족이 되기 위해 사랑의 제안을 들으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걸어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교 자매 교회들, 다른 종교의 길을 걷는 이들, 불안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이들, 선의를 지닌 모든 남녀와 함께 평화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 ‘사랑과 일치’, 66p.

주님의 따스한 현존은 우리의 완고한 고집과 움츠린 마음, 이기적인 마음,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도는 자기 사랑의 덫을 차례로 녹여 흘려보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홀로 살려 하다가 메말라 가는 삶의 위험에 맞서러 오십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길이 그 어느 때보다 넓어진 이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깊은 외로움에 빠지고, 늘 무언가와 이어져 있으면서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짜 만남은 잃어버리고,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홀로된 나그네가 되어 가는 위험 말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삶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전혀 다른 새 길을 찾아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쓰고 다니는 가면들 뒤편에서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도록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당신의 기쁨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 ‘경계를 열어 주시는 성령’, 126p.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며 동시에 ‘스포츠의 희년’ 행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스포츠’,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둘 사이에는 깊은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모든 인간 활동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도 분명 그러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더욱이 하느님께서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당신만의 세계에 갇혀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살아 있는 사랑, 친교 그 자체이십니다. 이 친교는 인류와 온 세상을 품어 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곧 ‘춤’이라 부릅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춤을 추는 것이지요.
―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의 춤’, 159p.

매일 침묵과 묵상, 기도 시간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돌보면 식별의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는 곧 식별하는 법을 배우는 작업입니다. 젊을 때는 수많은 열망과 꿈, 많은 야망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마음이 종종 복잡해지고 혼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동정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 내면이 마음을 지키고 묵상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바와 같이(루카 2,19.51 참조) ‘신발레인(synballein, 마음속에 간직하다-편집자 주)’의 역량, 곧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피상적인 것을 경계하고, 삶의 조각들을 기도와 묵상 안에서 하나로 모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내 여정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 ‘예수 성심으로 사랑하는 것’, 189-190p.

감수자의 글 · 5

1. 무장하지 않은 평화, 무장 해제시키는 평화 · 17
2.. 기쁨의 증인들 · 24
3. 기도와 책임 · 32
4. 경청에서 봉사로 · 41
5. 말을 순화하는 것 · 46
6. 평화, 진리, 정의 · 52
7. 사랑과 일치 · 61
8. 유일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 · 69
9. 은총, 신앙, 정의 · 76
10. 일치의 건설자들 · 81
11. 경청, 이해, 기억 · 87
12.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 주는 것 · 96
13. 유일하신 구세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 · 104
14. 강생과 보편성 · 111
15. 조화로운 우리 발걸음 · 117
16. 경계를 열어 주시는 성령 · 124
17. 성령 안에서 항상 풍요로운 하나의 교회 · 132
18. 베드로의 시선이 되는 것 · 138
19. 희망하는 것은 연결하는 것 · 146
20. 여러분은 희망의 빛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 151
21.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의 춤 · 158
22. 경이로움을 나누는 것 · 166
23. 자연법이라는 나침반 · 171
24. 희망을 증진시키기 위한 빵의 나눔 · 178
25. 예수 성심으로 사랑하는 것 · 185
26.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 · 194
27. 성부로부터 사랑받고 선택되어 파견된 사람들 · 202
28. 교회 친교와 생생한 신앙 · 209

교황 약력 · 216
미주 · 218

저자 레오 14세 교황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 교황이다. 본명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로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77년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2년 로마의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84년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1987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0여 년간 페루에서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쳤다. 2001년에 수도회 총장으로 선출되어 2013년까지 역임했으며 2014년 페루 치클라요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주교품을 받았다. 이듬해에 치클라요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고, 2023년에는 부제급 추기경, 2025년에는 주교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같은 해 5월 8일, 가톨릭 교회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역자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감수 한영만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로마 교황청립 라테란 교회법대학원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교 및 교회법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교회법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교황청 홍보부에 파견되어 바티칸 뉴스 한국어판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