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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사의 근본,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개정판으로 출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2026년 5월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개정판을 펴냈다. 47년 만에 전 3권으로 출간된 이번 개정판은 한자어에 음을 달아 가독성을 높이고,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해 주석을 보완하였다. 또한 권마다 색인을 수록하여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교회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로 연구자들에게 필수적인 문헌이 되는 것은 물론, 일반 신자와 청소년·청년들도 교회사를 손쉽게 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천주교사의 근본, 『한국천주교회사』 개정판 간행

『한국천주교회사』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샤를르 달레 신부가 한국 천주교회의 설립 과정과 순교사를 수록하여 1874년에 간행한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사 통사로서, 한국 교회사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이 책의 서설은 지리·역사·왕실·언어·가족제도 등 15개 항목으로 한국 전반을 개관한 한국학 개론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서양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본론에서는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에서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술하여, 한국 교회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가독성과 깊이를 더한, 47년 만에 나온 개정판

1979년 『한국천주교회사』 역주본 초판이 간행된 이후로 47년 만에 발간된 이번 개정판에서는 기존에 한자와 한글이 병용되어 있던 부분을 한글로 바꾸어 가독성을 크게 높였다. 그리고 그동안 새롭게 밝혀진 교회사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주석을 대폭 보완함으로써 최근 교회사 연구의 경향을 자세히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권마다 색인을 수록하여 연구자와 독자들이 관심 있는 내용을 더욱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여 학술적 실용성을 높였다.


연구자들과 일반 독자 모두 편하게 볼 수 있는 책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는 간행사를 통해 “최근 성지순례의 붐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이 이 책으로 더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밝혔다.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나온 『한국천주교회사』 개정판은 천주교회사와 한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연구 자료로 자리잡고, 교회사가 다소 생소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한국 천주교회사를 좀 더 가까이서 접하는 한편 이 책의 가치를 더 널리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책속에서]

그러므로, 왕이 직접 다스리고 대신과 고관들을 감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왕이 그렇게 하면 백성은 덕을 본다. 왜냐하면 그런 때에는 수령들이 경계하고 더 조심하여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암행어사들이 압정(壓政)과 독직(瀆職)과 재판 거부 같은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여, 범인들은 도무지 뜻하지 않은 때에 실총(失寵)이나 유배의 벌을 받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왕에게 애착심이 있는 온 백성은 그들이 받아야 하는 학정과 압제에 대하여 왕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 모든 책임은 수령에게 돌아간다. 옛날에 대궐에는 신문고(申聞鼓)라고 부르는 상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왕에게 직접 드리는 모든 청원을 받기 위하여 15세기 초에, 지금 왕조의 세 번째 왕이 설치한 것이다. 그 상자가 아직도 있기는 하나 거의 쓸모가 없이 되었다.

(‘서설 – 조선의 왕실’ 중에서, Ⅰ권 76쪽)


탁월한 학자는 온 국민의 스승으로 존경받고 모든 어려운 일에 관하여 문의를 받는다. 그들은 최고 관직에 오를 수 있고 만약에 그것을 사퇴하는 일이 있으면 그들의 신임은 그로 말미암아 더욱 커질 뿐이고, 임금과 대신들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실질적인 것이 될 뿐이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새 교인들 대부분은 유명한 학자들이었고, 정조(正祖)는 하도 그들을 존중하여 그들의 정치상 · 종교상의 적들이 온갖 음모를 꾸몄는데도 그들을 희생시킬 결심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1800년에 정조가 죽은 뒤 후계자의 미성년 기간에 비로소 그들을 사형에 처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처음 개종자들의 과학적 · 문학적 명성으로 이교도들이 신앙에 인도되는 수가 드물지 않다.

(‘서설 - 과거와 교육 제도 중에서’ 중에서, 151쪽)


조선의 양반 계급은 세계에서 비교적 가장 강력하고 가장 오만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군주, 사법관, 여러 가지 단체 등이 귀족 계급을 견제하여 그 권력과의 균형이 잡히게 하는 세력이 된다. 조선에서는 양반이 너무 숫자가 많고, 내부 싸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계급적 특권을 보존하고 확대하기 위하여 아주 잘 뭉칠 줄을 알아서 양인도 수령들도, 심지어 임금까지도 그들의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지 못한다. 소수 거족(巨族)의 지지를 받는 지체 높은 양반은 대신들을 파면시키고, 궁중에서 임금하고도 맞설 수가 있다. 감사나 수령이 지위가 높고 배경이 튼튼한 양반을 처벌하려 들다가는 틀림없이 자기가 파면당하고 말 것이다.

(‘서설 – 사회 신분’ 중에서, 201쪽)


조선 기록에 의하면 (이)승훈은 북경에서 나이가 90여 세나 되지만 근력이 좋고 외양이 지극히 인자한 서양 사람 삭덕초(索德超)를 만났고, 또 양(梁)이라는 젊은 사람도 만나보았다고 한다. 북경 시내의 네 군데 성당에는 약 60명의 사람이 있었다. (이)승훈은 천주교 교리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여 오래지 않아 세례받을 준비가 다 되었다. 귀국길에 오르기 전에 세례성사를 받았는데, 그가 조선 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베드로란 세례명을 받았다. 그때 북경에 있던 선교사 방타봉(de Ventavon) 신부가 1784년 11월 25일(양력) 자로 서양의 자기 친구들에게 이 기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다.

(‘최초의 입교자 이승훈’ 중에서, 360쪽)


방금 말한 권상연 야고보는 경상도 안동(安東)이 원래 고향이지만 얼마 전부터 공주(公州) 고을에 와서 사는 집안의 자손이었다. 그 집안은 높은 양반은 아니었으나, 그 일가 중에는 유명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권(상연)은 문학과 윤리를 공부하다가 자기 사촌 (윤지충) 바오로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 그는 이내 입교(入敎)하였고 충실히 실천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윤지충) 바오로의 어머니인 고모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자기 사촌의 용감한 행동을 본받았다. (윤지충)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그도 아무런 제사도 올리지 않았다. 그는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친척과 친구들의 비난과 욕설을 참아 받았고,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불행에 휩쓸렸다. 아니, 오히려 그의 행복을 나누어 가졌다.

(‘신해박해’ 중에서, 401~402쪽)


12월(양력)에 주(문모) 신부가 변문(邊門)으로 다시 오니 지(황) 사바와 다른 교우들이 그의 안내자 노릇을 하러 와 있었다. 신부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조선식으로 꾸미고 1794년 12월 23일(양력) 자정쯤 조선과 그를 갈라놓고 있는 무서운 장애물인 압록강을 건넜다. 다른 교우들이 변문과 마주 보고 있는 조선 쪽 강 언덕 위에 있는 의주(義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서울까지 인도하였는데, 그곳에는 1795년 초에 도착하였다. 그의 도착은 천주교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주었으니, 이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맞아들였다.

(‘주문모 신부의 입국’ 중에서, 457쪽)




간행사 … 7

연구소판 간행에 즈음하여 … 9

달레의 간행사 … 10

초판 간행사 … 12

초판 추천사 … 14

일러두기 … 20

머리말 … 21

교황의 축하 편지 … 31


서설(序說)

 조선의 자연 지리 … 36

 조선의 역사 … 51

 조선의 왕실 … 73

 정부 조직 … 86

 사법제도 … 132

 과거와 교육제도 … 149

 조선어 … 160

 사회 신분 … 197

 여성의 처지 … 220

 가족제도 … 238

 종교 … 251

 조선인의 성격 … 269

 오락 … 283

 주거와 풍습 … 291

 산업과 국제 관계 … 307


제1편 초기의 한국 교회


제1권 천주교의 수용

 제1장 왜란(倭亂)과 조선인 피랍자(被拉者)의 입교 … 328

 제2장 최초의 입교자 이승훈(李承薰) … 352

 제3장 첫 수난과 김범우(金範禹) … 375

 제4장 신해박해(辛亥迫害) … 396

 제5장 초기 지방에서의 박해 … 428


제2권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신유박해

 제1장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입국 … 452

 제2장 정조 말년의 박해 … 477

 제3장 초기 천주교 지도자와 신유박해(辛酉迫害) … 520

 제4장 주문모 신부의 순교 … 556


제3권 신유박해 후기의 양상

 제1장 강완숙(姜完淑)의 순교 … 596

 제2장 지방의 순교자 … 622

 제3장 이 루갈다의 순교 … 643

 제4장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 사건 … 679

 제5장 신유박해의 종말 … 716


색인 … 753


글쓴이 클로드 샤를르 달레 (Claude-Charles Dallet)

1829년 10월 18일 프랑스 오트마른(Haute-Marne) 주의 랑그르(Langres)에서 태어났다. 랑그르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거쳐 18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고, 1852년 6월 5일 사제품을 받았다. 같은 해 인도 마이소르Mysore 대목구로 파견되어 블랙팔리(Blackpally) 본당과 마이소르 본당에서 사목했다. 1860년 건강 악화로 프랑스에 귀국하여 1862년 프랑스 제국 인쇄소에서 타밀어와 칸나다어 글자의 펀치와 펀치 블록 조각을 지도했고, 이후 마이소르로 복귀했으나 1867년 다시 건강 문제로 귀국하여 1869년 파리외방전교회 로마 대표부를 담당했다. 1871년에는 파리외방전교회 기부금 모금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과 캐나다 등지를 여행했다. 저술 활동에도 힘쓴 그는 『논쟁교리문답(Controversial Catechism)』(1859년)을 비롯해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Le Séminaire des Missions-Étrangères de Paris)』(1871년),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l’Église de Corée)』(1874년) 등을 펴냈다. 1877년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 중국 동북부, 북경, 인도차이나 남부를 방문하던 중 병을 얻어, 1878년 4월 25일 베트남 케소(Ké-so)에서 선종했다.

 

옮긴이 안응렬, 최석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