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데 있어 수도원은 제도교회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와서, 특히 1,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유럽의 그리스도교는 쇠퇴해왔고,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따라 정결과 청빈, 순종을 실천하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로 살아가는 수도회와 수도원의 존재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향한 갈망 대신 외면적 가치, 물질적 가치가 점점 크게 부각되고 있는 현대에, 소란한 일상을 떠나 고독과 침묵 속에서 영성을 찾는 수도원은 역설적으로 더 가치있고 소중한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부터 시작해,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 성 파코미오, 카파도키아 성 바실리오, 투르의 성 마르티노로 시작해 서방 교회의 공동체 수도원을 완성한 노르치아의 성 베네딕토까지의 초창기 수도원 역사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수비아코의 동굴 수도원, 파라파의 성모 마리아 대수도원, 성 안티모 대수도원을 비롯해 여러 이탈리아 수도회와 수도원들을 꼼꼼하게 돌아본다. 각 설명에는 그 설명에 해당되는 수도원 벽화를 비롯한 그림들은 물론, 수도원을 찍은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주 꼼꼼하게 그린 수도원 평면도도 있다. 그 평면도에 그려진 대로, 수도원 입구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식당, 성당, 도서관들을 둘러보면서, 역사적 설명과 각 건축물이나 조각, 그리고 그림들이 주는 의미를 저자를 통해 듣다보면 새삼 수도원의 삶을 통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해 숙연한 생각이 들면서 하느님의 신비에 젖어들게 된다.
어쩌면 직접 가서 보았더라면 무심히 지나치고 말 것들에 대해서 오히려 책으로 읽음으로써 더 잘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성지 순례학 마스터 과정을 이수한 이 책의 저자 이관술님만이 할 수 있는 섬세한 설명 덕분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균형잡힌 시각이다. 교회 와 수도원 역사상의 이런 저런 실수나 다툼 등 중세 수도원의 역사들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언젠가는 이 수도원들을 돌아보고 싶다. 이 책의 설명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돌아본다면, 단순한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 하느님을 바라보는 순례의 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