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뿌리에서 길어 올린 신앙의 깊이, ‘예수님의 언어’를 만나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낱말
출판사: 생활성서사
저자: 잔프랑코 라바시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은은한 분홍빛 표지다. 흔히 ‘신학’이나 ‘히브리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 대신, 이 책은 소중한 이에게 건네는 한 송이 꽃처럼 따스하고 화사한 인상을 풍긴다. 이 책은 영혼을 돌보는 ‘영성적인 여정’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책의 본문 중 히브리어 단어 ‘마콤(môqmâ, מָקוֹם)’이 기억에 남는다. 히브리어는 우리에게 낯선 문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 생경한 규칙,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모음 체계는 비전공자에게는 높은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 잔프랑코 라바시는 이 낯선 단어들을 ‘장벽’이 아닌 ‘창문’으로 바꾸어 놓는다.

예를 들어 ‘마콤’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며 저자는 그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신이 머무는 신선한 공간’이자 인류 문명의 ‘중심’이라는 우주적 개념으로 확장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이론을 빌려 성전과 예루살렘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목은,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서 있는 일상의 공간을 어떻게 거룩하게 변모시킬 것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히브리어 단어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곧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돌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텍스트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가 품고 있는 수천 년의 숨결을 내 삶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성경을 절대로 손에서 내려놓지 마시오”라고 권고하며 그 끈질긴 인내 끝에 찾아올 영적 기쁨을 약속한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성경 역시 익숙한 구절들로만 소비되곤 한다. 이때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낱말’은 우리를 성경의 원형으로 되돌려 보낸다. 예수님이 직접 발음하셨을 그 낱말들의 진동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나의 기도는 더 깊어지고 신앙의 언어는 더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초심자에게는 친절한 안내서가 익숙한 신앙 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기존 신자에게는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서가에 꽂아두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룩한 ‘마콤(장소)’이 되어준다.